6·25 한석산 전투 戰死 강태조 일병, DNA로 유족 찾아
백일때 한번 안아주고 이별 "백두산 상봉에 태극기 날리며 죽어서 뼛골이나 돌아오리다" 어머니께 불러주신 군가 기억… 유해발굴감식단 신원 확인
6·25 참전 용사는 62년 만에 딸의 품에 안겼다. 딸은 흐느꼈지만 영정 속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국방부가 6·25 당시 육군 7사단 소속이던 강태조 일병의 유해를 발굴해 유전자(DNA) 감식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다른 단서 없이 DNA 감식만으로 6·25전쟁 전사자를 확인한 다섯 번째 사례다.
강 일병은 1948년 말 임신한 동갑의 부인을 두고 입대했다. 1949년 여름에 휴가 나와 백일이 갓 지난 딸 춘자씨를 한 번 안아보고 돌아갔고, 이후 부녀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강 일병은 1951년 4월 강원도 동부 전선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한석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58년이 지난 2009년 5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한석산에서 허벅지 뼈 하나를 발견했다. 감식단장 박신한 대령은 "다른 유해는 찾을 수 없었고, 인식표 같은 유품도 사라져 당시에는 신원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이미 환갑을 넘긴 딸 춘자씨는 지난해 6월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보건소를 통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혈액을 보냈다. 국방부는 그간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해 6000여구와 DNA 비교 과정을 거쳐 허벅지 뼈의 주인이 춘자씨의 아버지 강 일병인 것으로 확인했다.
62년 만에 이뤄진 부녀의 만남은 서러웠다. 아버지는 군가(軍歌) 속의 이름 없는 병사처럼 뼈가 되어 딸의 곁으로 돌아왔다. 강춘자씨(62)씨가 17일 경기도 성남의 자택에서 6·25전쟁 때 전사한 아버지 고(故) 강태조 일병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울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군은 강 일병의 소속 부대 전투 기록을 추적, 그의 사망일을 1951년 4월 24일로 추정했다. 17일 국방부로부터 아버지 유해를 전달받은 춘자씨는 "기일을 몰라 6월 25일에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제 날짜를 맞출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입대 직전에 불러주셨던 제목 모를 군가를 잊지 못하고 저한테 자주 들려주셨어요. 벌써 팔순이 넘으셨는데도 후렴까지 다 기억하세요."
'아버지 어머니! 평안하게 계시오. 까마귀 우는 곳에 저 가겠소. 삼팔선 넘어 백두산 상봉에 태극기 날리며 죽어서 뼛골이나 돌아오리다. 아내여! 굳세게 새 세상 사시오. 우리 다시 만날 백년의 언약. 지금은 이별가를 합창하고 가오니 나에게는 중대한 책임이 있소'.
유해발굴감식단은 1951년 9월 강원도 양구 백석산 전투에서 전사한 김영석 일병의 유해도 지난 6월 발굴했다. 당시 발견한 인식표의 이름과 군번을 토대로 아들 인태(62)씨를 찾아 DNA 검사를 통해 부자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 강 일병과 김 일병의 유해는 다음 달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2000년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후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으로 돌아간 유해는 모두 68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