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만에 인정받은 순직
칠성소식

33년 만에 인정받은 순직

8월31일 국방부는 군 복무 중 의문사한 김훈 중위를 19년 만에 순직으로 인정했다. 또 다른 대표적 군 의문사 피해자인 허원근 일병도 지난 5월 33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소속 허 일병은 3발의 총상을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자살로 처리했다.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허 일병의 죽음이 타살이고 군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재조사를 거쳐 다시 자살이라고 반박했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77)는 지난 30여 년 동안 생업을 포기하고 고향 진도와 서울을 오가며 국방부를 상대로 ‘전쟁’을 치렀다. 허씨는 “원근이가 순직 처리됐지만 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전남 진도 자택을 찾아 ‘달걀로 바위(국방부)를 깬’ 허영춘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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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구
허영춘씨는 “원근이가 순직 인정받았다고 해서 내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군대에서 의문사로 자식을 잃은 가족들의 한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원근 일병이 떠난 지 33년 만에 순직 결정을 받았는데?

억울한 심정이 바뀐 것은 없다. 국방부는 그동안 원근이 사망의 진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다. 국방부가 잘못을 사과한다고 해서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가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대한민국 군대는 영영 불신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순직 인정으로 아버지의 30년 전쟁은 끝나는가?

원근이가 순직 인정받았다고 해서 내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군대에서 의문사로 자식을 잃은 가족들의 한이 아직 안 풀리고 있다. 군사정권 적폐 청산 차원에서라도 그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강제징집을 당한 뒤 군에서 의문사한 이들은 노무현 정부 때 어느 정도 조사하지 않았나?

노무현 정부 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과 같이 다루기로 했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민간인 학살에 치중하는 바람에 강제징집 의문사 사건은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  

허 일병도 당시 강제징집을 당했는가?

원근이는 강제징집은 아니다. 당시 내가 어업을 하며 비교적 많은 돈을 벌었다. 원근이를 수산대에 보냈다. 내가 수산을 하고 있고 돈을 벌고 있으니 수산업을 제대로 하면 군수나 서장 부럽지 않겠다 싶었다. 수산대에 안 보낼 수도 있었는데… 그때 집사람한테도 원망을 많이 받았다. 가난한 집도 아니면서 돈 쌓아두고 자식 군대 보내 죽게 만들었다고. 

맨 처음 아들의 사망을 어떻게 알았는가? 

우체국에서 원근이가 죽었다는 전보가 왔다. 아내를 진정시키고 진도 읍내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내 매형과 별도로 기사도 한 명 구해서 그 차로 다섯 식구가 달려 새벽에 강원도 화천에 도착했다. 헌병대로 안내받아 들어갔더니 아들이 자살했다고 전했다. 자살할 이유가 없으니 사체를 보자고 했지만 법의학자가 오기 전에는 보여줄 수 없다고 하더라. 한참 뒤 법의학자가 오고 나서 아들을 봤다. “M16 소총으로 자기 몸 세 곳에 각각 대고 세 발을 쏘아 죽을 수도 있느냐”고 물어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 쏠 수 있다”고 하더라. 말이 안 통했다. 법의학자와 싸우고 부검 거부 의사를 밝혔다. 

군이 처음부터 자살로 몰아간다는 인상을 받았겠다. 

“자살로 인정 못한다. 자살이라고 주장하려거든 당신들 알아서 처리해라” 하고 사흘 만에 집으로 내려와버렸다. 사흘째 집에 연락해보니 원근이 할머니, 그러니까 노모가 식사를 안 하고 계신다고 해서 바로 내려와서 진정서·탄원서를 국회와 대통령한테 냈다. 

전두환 정권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진정서를 냈더니 국방부 범죄수사단(범수단)에서 오라고 해서 갔다. 범수단에서는 자살이니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또 “자살이 아니라고 떠들고 다니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테니 몸조심하라”고 협박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하고 나왔다.

군에서 사건 관련 자료를 내주었나?

1984년 사건 날 때부터 현장 사진이랑 아들 유품 등을 달라고 했지만 4년 동안 주지 않았다. 노태우 정권으로 바뀐 뒤 1988년 내가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농성을 벌이니까 일부 자료를 넘겨줬다. 그때 대법원장 출신 변호사를 찾아가 자료를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이거 잘 보관했다가 좋은 세상 오면 터트려라. 좋은 세상 아니면 절대 해결 안 된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어떻게 대응했나?

전국을 돌며 원근이 부대 전역자들을 만났다. 타살당했다는 정황을 수집한 뒤 국방부에 재조사 진정을 냈다. 국방부 답변은 한결같이 ‘전과 동(同)’이었다. 한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는데, 진정 서류가 다시 왔다. 그런데 “지금 군인들 세상인데 어떻게 그 사람들이 밝혀주겠냐”라는 짤막한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1998년 김훈 중위 사건이 터지면서 군 의문사가 이슈가 되었는데?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함께 국회 앞에서 기나긴 농성을 벌여 의문사 진상규명 관련 법이 만들어졌다. 국방부에서도 별도로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여의도 농성을 시작하니까 국방부에서 나와서 원근이 사건 조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내부적으로 반대가 있었지만 나는 가능하면 국방부의 거짓말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국방부 조사관들을 따라갔다.

당시 성과는 좀 있었나?

예전에 두세 번 가봤던 최전방 사건 현장까지 갔다. 국방부 조사관들이 대대장에게서 진술서를 받은 게 하나 있는데 중대장이 원근이를 죽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중대장이 월북하려는 것을 당번병인 원근이가 말려서 중대장이 쏘아 죽인 것이라는 말이 1999년 국방부 자체 조사를 통해서 나왔다. 국방부가 보내온 서류를 보니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1999년까지만 해도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특조단)에서는 타살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는 뜻인데?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1998년쯤 중대장이 지병으로 죽으니까 그 중대장에게 덮어씌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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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
33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은 허원근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씨(왼쪽)와 19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은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예비역 육군 중장)의 모습.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는 타살이라며 범인까지 특정했는데?

2002년과 2004년 의문사위가 3중대 19소초 노○○ 선임하사가 4월2일 새벽 2시께 술자리에서 원근이를 쏜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허원근이 왼쪽 가슴에 첫 발을 관통당한 뒤 3중대장은 대대 상황실에 자살했다고 허위 보고했고, 보안대에서도 자살 허위 조작으로 사건 수습을 도왔다는 점도 밝혀냈다. 당일 오전 11시께 부대 내 누군가가 허원근의 왼쪽 가슴과 오른쪽 이마에 M16 소총 2발을 더 발사했다는 거였다(의문사위 조사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허원근은 복무 중 중대 간부들이 규정을 어기고 술을 마신 것이 발단이 되어 상관인 노○○(19소초 선임하사)가 발사한 총탄과 나머지 2발의 총탄(주체는 불확정)을 맞고 사망에 이르렀고, 중대 간부들은 허원근이 최초 총격으로 쓰러졌을 때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살로 위장하였는 바, 허원근의 사망은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하여 사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의문사위의 타살 범인 지목 발표 후 왜 국방부 특조단은 다시 자살로 견해를 바꿨나?

의문사위 발표 뒤 국방부가 별도로 특별진상조사단을 꾸려 3개월 동안 원근이 사건을 조사했다. 그 조사 기록도 2930쪽에 달한다. 의문사위 조사보다 훨씬 더 성실하고 철저한 측면도 있었다. 그때 특조단 일부도 ‘허원근이 자살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더라. 원근이를 쏜 노○○도 특조단이 조사 때 ‘그날 밤 술이 취해 총을 들고 겨눴는데 뒤에서 누가 껴안으면서 그때 총이 원근이에게 발사되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까지 진술을 받아냈다.

왜 특조단 결론이 갑자기 자살로 뒤바뀌었나?


당시 정수성 특조단장이 타살 조사 결론을 폐기해버렸다. 기존 의문사위 조사 결론에 대해서도 조사 방법이 틀렸다고 했다. 정수성 단장은 김훈 중위 사건을 예로 들며 법의학자들이 사인 규명을 할 수 있다며 국방부가 섭외한 법의학자 다섯 명에게 다수결 투표 식으로 물어본 뒤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사인을 다수결로 결정지을 사항이 아니라고 법의학 교과서에 나와 있다. 어쩐 일인지 김훈 중위와 허원근 일병 사건을 보면 국방부는 법의학자들에게 다수결 의사를 물어 결론을 냈다.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되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법의학자들에게 실망했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무원록> (無寃錄·증수무원록대전)이란 책을 만들어 관리들에게 배포했다. 사람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줄 수 있다며 책 제목을 <무원록>이라 지었다. 그 가치를 지금 법의학자들은 모르는 것 같다. 의문사위 자문을 맡았던 국과수 출신 인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국방부나 검찰이 밥 먹여주는데 누구 편에 서겠냐. 그것을 바로 세워주지 않으면 다음에 죽은 아들의 부모들은 더 설움을 받을 것이다.” 

제도적인 개선책은 없는가?


2005년 내가 의원들 찾아다니면서 요구해 검시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허원근법)’이 발의됐다. 검찰과 경찰이 반대하고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허 일병을 국립묘지로 안장하나?


국립묘지로 안 보낼란다. 가족회의를 해서 서울 흑석동에 있는 천주교 납골당에 데려다 놓았다. 둘째 아들(허원근 동생)이 나중에 원근이 곁에다 나하고 집사람도 같이 모시겠다고 납골당을 마련했다.

순직 결정 이후 보상 문제는?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 판결이 1심에서는 타살이라 했고 고등법원에서 자살이라고 뒤집으면서 위로금으로 3억원만 주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으로 가니 사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르겠다면서 역시 위로금 3억원만 인정했다(허씨가 제기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법원은 타살, 2심 법원은 자살로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자살도 타살도 규명할 수 없다며 군 수사기관의 현저히 부실한 조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나는 진실을 감추는 판결이라 그 돈은 못 받겠다고 버텼다. 그러다 순직 결정이 나서 위로금은 수령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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