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57- 5연대 부연대장 부임
칠성소식

<570>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57- 5연대 부연대장 부임

정유광(03.10경기) 0 10,841 2010.03.30 11:27


  
 <570>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57- 5연대 부연대장 부임







육군본부에서 갑자기 나에게 보직 제의가 있었다. 우리나라 첫 유격전을 경험했으니 새로운 분야의 계획업무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에 앉아 펜을 굴리는 체질이 아니다. 그래서 단호히 전방을 원했다.

“계속 싸우고 싶습니다.”이때 마침 영천 전투에서 직속상관으로 있었던 김용배 7사단장(육사2기)이 양구 북방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나를 불렀다. 흔쾌히 응하고 진지로 가니 5연대 부연대장 보직이 주어졌다. 김사단장 이하 군 간부들이 북한의 유격대장 길원팔을 잡은 내가 부임해 온 것을 대단히 환영했다.

본래 5연대는 부산에 근거지를 두었으나 전쟁이 나자 전방에 배치됐다가 거의 전멸했고, 영천 전투 때 재편성된 부대였다. 그 후 전쟁에 투입됐지만 총소리만 들어도 도망간다고 해서 ‘왔다갔다연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형편없는 부대였다. 부대가 왜 이렇게 오합지졸이 됐을까를 살펴보니 그럴 만도 했다.

1년 사이 연대장이 6명이나 교체됐으며, 그것도 대부분 작전 실패와 전사, 팔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후송되고 그나마 몇 명은 모종의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은 형편이었다. 그래서 장교들 사이에서는 “7사단 5연대로 가면 죽는다”는 악소문이 나있는 형편이었다.나는 부임 첫 과제로 사기앙양을 내세웠다.

싸우기도 전에 이미 질 것이라는 자기 굴종과 자기 체념은 군대가 버려야 할 가장 큰 악폐라고 보았다. 5연대처럼 무수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병사들에게 단 한 번의 승리야말로 사기앙양의 절대조건이라고 보았다. 나는 훈련을 철저히 시켰다. 심지어 야간사격도 잠을 잊어 가면서 시켰다.

당시 장병들은 겁이 많아 밤에 보초를 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나도 무작정 총을 갈기는 버릇이 있었다. 야간사격은 매우 위험한 요소를 안고 있다. 총의 불빛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게 되고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 이런 것들 때문에 패퇴한 것이다. 따라서 적을 사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지는 극도로 사격 행위를 억제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신감을 심어 줬다. “부연대장은 적 후방에 침투해 두 달 동안 휘젓고 다닌 무시무시한 군인이며, 김용배 연대장(전사·사단장과 동명이인)은 일본군 지원병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른 역전의 용사다”라는 투의 좋은 루머를 퍼뜨렸다. 지휘관을 서로 치켜세워 주는 사기앙양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연대는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7월로 접어든 어느날 김용배 연대장이 전방지휘소에 들러 상황을 살피다가 나무 밑에 천막을 치던 중 적 포탄이 천막을 강타해 연대장은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정말 5연대는 어떤 무엇도 안 되는 연대인 것 같았다.

이후 5연대장을 맡겠다는 후임이 나오지 않았다. 졸지에 내가 5연대장 직무대리를 맡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직무대리를 맡은 한참 후에도 연대장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김용배 사단장이 화를 내고 나를 연대장으로 진급시키려고 육본에 명령을 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의 진급은 솔직히 빠른 편이었다.

사단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어떻게 육사5기생을 연대장을 시키느냐, 2기생도 연대장이 빠르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는 소문들이었다. 사단장도 이런 비판을 의식했던지 어느날 이렇게 말했다.

“그럼 대안을 내시오. 도대체 오는 놈이 없는데 계속 직무대리로 두고만 있을 수는 없소. 사실 채명신 중령은 그동안의 전과도 대단하고 지금 부대원의 사기도 앙양시키고 적과의 교전도 확실하게 수행하고 있소. ‘왔다갔다연대’를 잘 이끈 것만으로도 공이 있소. 전쟁터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군인이 필요한 것 아닌가. 기수가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말하자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단 사람은 없었다. 김용배 사단장의 고집으로 나는 1951년 8월 어느날 육사5기 동기생 중 가장 빠르게 대령으로 진급해 연대장이 됐다.

<채명신·예비역 육군중장·전 주월한국군사령관/정리=이계홍·용인대 교수·인물전문 대기자>

200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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